?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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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20절) 믿음은 마음의 움직임이요, 이어지는 삶입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란...

Ⅰ. 예수를 찾는 마음/삶 (14-15)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하시야 왕은 병들매 블레셋 에그론의 신 바알세불에게 도움을 구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불에게 물으려고 보내느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왕하 1:6) 남왕국 유다의 아사 왕은 발에 병이 들어 위중할 때 하나님을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만 찾았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선견자 하나니를 통해 주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 16:9) 오늘 본문에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구합니다.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15절) 이것이 산을 옮길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 주님을 찾는 것이 믿음입니다.

Ⅱ. 예수께 맡기는 마음/삶 (16- )

믿음은 맡기는 것입니다. ‘믿음’을 영어로는 ‘faith’와 ‘belief’를 쓰지만 ‘trust’란 단어도 사용합니다.

‘trust’는 ‘믿음, 신뢰, 확신’이라는 뜻 외에 ‘위탁’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맡긴다’는 말입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시 37:5-7) 믿는다 함은 맡기는 것이요, 의지하는 것이요, 잠잠히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동일한 기사를 전하는 마가복음과 함께 짐작해 보면, 제자들이 아이를 데려오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안 되는 것입니다. 한때 귀신도 물리치고 병도 고치는 권능을 행했던 제자들입니다.(10:1) 그런데 안 됩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제자들이 주님을 의지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제까지의 자기 경험과 지식, 자기 능력으로 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아이 성 앞에서의 실패입니다.

믿음은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Ⅲ. 예수를 품은 마음/삶 (17-21)

예수님이 제자들과 그리고 거기서 함께 논쟁하던 서기관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17절) 예수께서 귀신을 꾸짖으시니 나가고 아이가 온전해졌습니다. 이때에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20절) ‘믿음이 없다’(아-피스토스) 하신 주님이 이제는 ‘믿음이 작다’(올리고-피스티아) 하십니다. 우리는 믿음의 크고 작음을 논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크다 싶으면 우쭐하고, 작다 싶으면 기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신념의 대소를 보지 않으십니다. 그 믿음 안에 생명이 있는가를 보십니다. 겨자씨는 작지만 심으면 자랍니다.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란 생명이신 예수님을 품은 믿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밖에 있는 마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모신 마음입니다. 예수를 이용하는 삶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목적인 삶입니다.

그 믿음이 산을 옮깁니다.